설계를 영어로 하면 디자인! 하지만 우리는 디자인과 설계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어감상 설계라는 단어가 공학적이라면 디자인은 멋진 그림을 그려내는 일 같다. 공대냐, 미대냐?
자, 그럼 웹은 어떤가? 디자인해야 할까? 설계해야 할까? “웹디자인” 이라는 말이 익숙한 만큼 우리는 웹을 디자인의 대상으로만 봐왔던 것 같다. 지금까지 줄곧 웹을 시각적인 결과물로만 이해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터넷 세계에선 보여지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예를들어, 직원 한 명 없이 운영되는 동네 점포도 웹에선 다국적 기업을 흉내낼 수 있는데 이때의 디자인은 가짜 그림을 만들어내는 일이 된다. 웹을 ‘사이버 공간’이 아니라 ‘사이비 공간’으로 불러야 할 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바라보는 웹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상대를 속일 수 있고 그래서 속 없는 껍데기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정체를 알 수 없으나 섹시한, 그런 유령들의 파티장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때 등장한 것이 블로그다. 지금은 파워블로거와 자본이 결탁해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분명 블로그는 디자인이 아닌 컨텐츠로 살아가는 놈이다. 우리나라에선 워낙 블로그를 홈페이지/웹사이트와 구분해서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정보를 담고 있을 뿐이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블로그엔 없는 고급정보가 홈페이지에 있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어디에 서도 이상할 것 없는 카피 몇 줄에 백인 모델이 서 있는, 그게 무슨 정보가 되겠느냐 말이다. 사실 우리가 흔히 ‘홈페이지’라고 부르는 곳에는 그럴듯한 그림만 있지 유용한 정보랄 게 없다.
그에 비해 블로그는 컨텐츠 그 자체로 살아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구분할 때, 컨텐츠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보면 그 차이는 확연히 나타난다. 다만, 우리나라의 블로그는 네이버나 다음 등 주요 포탈사이트에서 서비스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다가 컨텐츠를 관리하는 구조나 표현 형식이 단순하고 획일화되어 있어 사적인 ‘일기장’ 이라는 인식을 넘어서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다시 말해, 블로그는 허세 가득한 웹을 컨텐츠 중심으로 돌려 놓았지만 형식과 디자인에 대한 숙제가 남았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세상에 고개는 든 녀석이 하나있는데 바로 “워드프레스(wordpress)”라는 녀석이다. 처음엔 설치형 블로그툴로 알려지다가 3.0으로 버전업되면서 다양한 확장 기능들을 선보였는데 custom post type 이라는 것도 이 때 등장했다. 바로 컨텐츠를 형식별로 사용자화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이다. 기존의 블로그 글을 워드프레스에서는 포스트(post)라고 하는데 제목이 있고 본문, 요약글, 카테고리, 태그, 대표이미지… 등으로 구성되있다. 그리고 그런 입력폼에 내용을 채워넣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블로그 형식으로 보여지게 된다. 그런데 일반적인 일기 형식의 글이 아니라 사진이나 건축물, 사람, 애완견, 책 등 성격이 다른 대상을 데이터베이스화 하려고 한다면 글제목, 본문, 요약, 카테고리, 태그의 구성이 아닌 다른 구분과 형식이 필요해진다. 예를 들어 세계 각국의 건축물을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건축물의 이름과 위치, 성격, 연락처 등등 일기를 쓸 때와는 다른 다양한 정보를 세분화하고 성격별로 분류할 필요가 생기는데 커스텀 포스트 타입(custome post type)은 이런 형식을 사용자가 확장해서 만들어 쓸 수 있게 해준다.
커스텀 포스트 타입으로의 확장되면서 블로그툴로 불리던 워드프레스는 “CMS(Content Management System)엔진” 이라는 새로운 직위를 수여받게 된다.
이런 웹 환경의 변화 그리고 워드프레스의 진화가 의미하는 것을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디자인이 겉모습 곧 허울을 만드는 일이었다면 이제 속을 들여다보고 안과 밖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젠 페이지 디자인이 아닌 컨텐츠 관리 방식 자체를 디자인하는 단계로 들어서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웹디자인 이라는 말은 웹설계로 바꿔보면 어떨까? 컨텐츠에 포커스를 두고 생산적인 CMS를 계획하는 일. 디자인에 매몰된 웹을 재건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